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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포럼>비정규직법, 갈등 줄일 세칙 마련해야 [문화일보 2006-12-06] 관리자 2007/02/08 10079
비정규직 관련 3대 법안이 2004년 국회에 제출된 지 만 2년 만에 통과됐다. 내년 7월부터는 비정규직도 같은 직장에 2년 이상 근 무하면 정규직과 차별없이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죽봉을 들고 국회에 진입하여 이 법을 무 효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경영계는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양극 화를 심화시키지나 않을지 내심 우려하고 있다. 앞으로 법 운용 과 관련하여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논란은 우리나라 특유의 노동시장과 비정규직법의 법적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지난해 8월 기준 근로자의 37%에 해당하는 548만명이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기형적인 구조다. 그리고 이들의 월평균임금은 정규직의 62.8%, 국민연금과 산재보험 적용 비율 은 각각 29.7%와 43.1%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가운 데 절반 이상이 15∼29세의 청년층이다. 이 정도면 비정규직 문 제 해결을 위한 법적인 틀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또한 비정규직법은 전통적인 노동법과는 그 본질이 조금 다르다.

원래 노동법은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탄생했다. 당시 영국의 맨체스터와 리버풀 등 공업도시 근로자의 평균수명은 20세 정도 였다. 특히 10세 전후의 어린이들이 탄광에서 일하다 진폐증으로 사망한 것이 평균수명을 낮추는 데 크게 작용했다. 노동법은 이 처럼 사용자에 비해 부당할 정도로 차별대우를 받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은 정규직 근로자 에 비해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근본 목적을 두고 있다. 사용자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노동법이라는 시각도 어느 정도는 변해야 하는 시대다.

그동안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는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꼽아 왔다. 특히, 최근 들어 청년실업률이 일반실업률의 2배에 이르는 등 일자리를 못찾은 청년이 40만명에 가깝다. 그나마 일자리를 잡은 청년들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이번 비정규직법이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법의 당사자들, 즉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이가 커 서 이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노동계는 이 법이 사용자 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 면 경영계는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 없이는 비정규직 문제 해 결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양측 모두 남의 탓만 하고 있는 형국 이어서 ‘노·사’ 갈등뿐만 아니라 ‘노·노·사’ 갈등으로 인 한 혼란이 우려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두 당사자의 인식 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남의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노동 계와 경영계 모두가 한 걸음씩 양보해야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업들은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 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능력계발에 만 전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는 정규직의 철밥통을 깨는 심정 으로 임금을 안정시켜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비정규직의 처 우 개선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비정규직법 운용과 관련하여 논란의 소지가 큰 것은 ‘차별적 행 위’의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대로라면 근로자가 차 별이라고 느끼기만 하면, 기업이 이를 부정하는 증거를 대지 못 하는 한 법적인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시정 신청이 노동위원회에 봇물 터지듯이 밀려들 것이 자명하다. 시행령이나 시행세칙 마련시 ‘차 별적 행위’의 판단 기준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 다.

[[전삼현 / 숭실대 교수·법학, 기업소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