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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업 목죄는 무차별 ‘소송전쟁’[파이넨셜 뉴스 2007-03-08] 관리자 2007/03/14 10415
지난달 9일 국민은행 법무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에 직원들이 일일이 답변하느라 사무실은 마치 시장바닥 같다. 팩스기는 '삑삑∼' 소리를 내며 연신 전송지를 토해 내고 있고 복사기에는 임원들에게 전달할 보고서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20명으로 구성된 법무실에는 최근 들어 이 같은 비상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이날 법원은 지난해 국민은행이 e메일을 통해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에 대해 피해자 1026명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인당 10만원의 배상액을 지급하라며 법원이 고객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집단소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넥스트로 측에서 배상액 10만원은 너무 적다며 항소를 한 것. 게다가 지난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또 다른 피해자 400여명도 추가소송에 나설 전망이다. 국민은행도 이에 맞춰 법적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상장사들이 잇따라 송사에 휘말리고 있다. 잦은 소송으로 경영에 영향을 미칠 지경이다. 대기업의 경우 평균 100건가량의 소송에 걸려 있어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새로 송사에 휘말린 건수는 200여 건에 달한다. 전년에 비해 30%가량 증가한 수치다. 올 들어서는 더욱 늘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상장기업들이 소송을 당한 횟수는 81건.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500건에 육박한다.

특히 코스닥 상장사가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코스피 상장사에 비해 2배 가까이 많다. 별도의 법무팀을 두고 송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소송 한 건에 기업의 성쇠가 달린 경우가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들은 법무관련 부서를 강화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말 많은 은행권 줄잇는 소송으로 분주

은행들은 '소송으로 해가 뜨고 판결로 해가 진다'고 할 정도로 법적분쟁이 잦은 곳이다. 국민은행 외에 외환은행도 피소건수가 165건에 이를 정도로 많은 소송에 휘말려 있다. 소송가액도 555억원을 웃돈다. 또 대구은행과 부산은행도 각각 30건, 18건의 소송에 걸려 있다. 두 은행의 소송가액은 343억원에 이른다.

은행과 기업을 상대로 한 잇따른 소송은 인력과 시간, 비용 부담을 증대시켜 결국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모 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소송에 휘말린 상태에서는 솔직히 특별한 대책이 없다"며 "대부분 상위법원 판결까지 갈 정도로 항소에 항소를 거듭하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반(反)기업 정서도 한몫 한다는 분석이다. '일단 소송부터 걸자'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 이에 따라 과도한 소송이 기업경영을 위축시키고 투자의욕을 꺾으며 기업가 정신과 창의력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소송연구회 회장인 숭실대학교 법학과 전삼현 교수는 "기업들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소송 건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상장기업 평균 100건 이상의 소송이 걸려 있다는 것은 기업의 경영을 위축시키는 측면이 짙다"고 지적했다.

■기업들 산 넘어 산…뾰족한 대책은 없어

"그나마 보험이라도 들어놨으니까 안심이죠. 회사와 임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면 승·패소에 관련없이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닙니다."

최근 증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증권업계는 대책마련에 비상이다.

해답은 바로 '임원배상 책임보험'. 기업입장에서 소송에 대한 마지막 보루라 할 정도로 유일한(?) 안전장치다. 임원배상 책임보험은 회사임원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실이나 소송으로 입게 된 손해를 보상해 주는 일종의 기업보험. 최근 6년새 6배 가까이 늘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00년 300억원대에 불과했던 책임보험 가입액은 2002년엔 두 배 이상 늘어난 761억원을 기록했고 이어 2004년과 2005년엔 각각 1528억원, 1998억원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A증권 법무팀 관계자는 "지점수와 사업영역이 점차 늘면서 소송건수가 늘고 있다"며 "보험액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송이 많이 발생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버티자' vs 중소기업 '직격탄'

대기업 상장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무업무가 약한 중소 상장사 입장에서는 소송 자체가 큰 부담이다. 소송 한 건에 회사가 문닫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승패와 상관없이 신뢰도와 주가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올 2월에만 두 차례 송사에 휘말린 솔빛텔레콤의 경우 기업합병과 관련, 대표 횡령죄로 피소돼 연일 하한가로 추락하다 결국 주식거래 정지 사태까지 갔다. 극한 상황인 상장폐지 위기에 직면한 것. 지난해 영업손실폭이 커져 자본전액잠식 및 2년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의 사유로 상장폐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고제의 경우는 소송이 잘 해결되고 있음에도 주가는 직격탄을 맞은 경우다. 전 경영진 횡령금액 269억원 중 60억원이 환수됐음에도 불구하고 상·하한가를 번갈고 있는 것. 올 들어서만 10여건의 송사에 휘말린 파인디지털도 의결권가처분신청 등이 잘 해결되고 있음에도 주가는 부진한 흐름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향후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더욱 남발될 것"이라며 "증권집단소송제가 시행되고 이중대표소송제와 소비자집단소송제 등이 본격화되면 기업들의 경영권 행사가 위축되고 적극적인 사업진출 등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godnsory@fnnews.com 김대희기자